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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일대기


복음과 사랑으로 한평생 ‘사도행전적 교회’ 일군 고(故) 하용조 목사

 

복음과 사랑으로 한평생 ‘사도행전적 교회’

일군 고(故) 하용조 목사

 

 

약한 자 섬긴 따뜻한 사람

 

하용조 목사는 1946년 9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났다. 5살 되던 해에 터진 6?25 전쟁으로 부모님과 함께 한반도 끝자락인 목포로 피난해 그곳에서 자랐다. 당시 거리에는 전쟁과 질병,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하용조 목사는 고아원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거리의 고아들을 자주 집으로 데려 왔다. 부모님이 운영한 고아원은 25년 넘게 250여 명의 고아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보금자리가 되었다. 하용조 목사는 어린 시절을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약한 자를 섬기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부르심에 순종한 청년 시절

 

 

청소년 시절 하용조 목사는 역사와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젊은 사색가였다. 삶의 의미, 실존, 생의 방향을 깊이 묵상하던 중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다. C.C.C.에서 학생 리더로 캠퍼스를 섬기며,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생활을 보낸 하용조 목사는 졸업 후에도 C.C.C.의 학원선교 간사로 대학생 선교에 헌신하였다. 하용조 목사는 한국 C.C.C.를 세운 김준곤 목사의 영향으로 복음, 성령, 민족을 향한 열정을 갖게 되었고, 대형 집회와 소그룹을 통해 전도와 양육에 대한 집중적인 훈련을 받았다.
주님의 음성에 순종해 하루하루 하나님께로 나아가던 하용조 목사는 갑작스럽게 폐결핵을 앓는다. 이 고통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그를 목회자로 부르셨다. 대학 졸업 후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1974년 신학 공부(M.Div)를 마쳤고, 197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신학교 시절 만난 장로회신학대학원 주선애 교수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성, 긍휼의 마음, 거룩한 삶을 배웠다.

 

 

 

 

문서사역의 새 지평, 두란노서원 

 

하용조 목사는 신학생 시절부터 영화배우, 탤런트, 가수 코미디언 등 수많은 연예인을 전도했다. 당시 아무도 돌아보지 않던 황무지에 복음의 씨를 뿌린 것이다. 그 씨앗이 한국 최초인 ‘연예인교회로’ 열매를 맺었다. 이 교회에서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대중을 위한 열린 새신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연예인교회에서 7년 간 사용한 하용조 목사는 또 다시 쓰러졌다. 과로로 인한 만성간염과 당뇨, 고혈압이 겹쳤다. 목회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하 목사는 연예인교회를 사임하기에 이른다.
병상에서 사도행전을 묵상하던 중, 바울이 에베소에서 ‘두란노서원’을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하용조 목사는 최고 수준의 기독 서적, 잡지, 세미나를 통해 복음으로 세속문화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비전을 품게 된다. 그리고 병상에서 일어난 1981년 12월 두란노서원을 창립했다. 
 
2010년 창립 30주년을 맞은 두란노서원은 3,000여종의 단행본을 출판했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큐티지인 <생명의삶>과 평신도를 깨우는 <빛과소금>, 목회자를 위한 <목회와신학> 등 7종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특히 <생명의삶>은 영어판, 일본어판, 중국어판, 스페인어판 등으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하용조 목사는 두란노서원에 성경대학을 개설하였다. 이곳에서 가정, 문화, 선교 등 다양한 분야의 세미나와 훈련 프로그램으로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웠다. 두란노서원를 시작할 무렵, 하용조 목사는 OMF 선교사이자 강해설교가로 유명한 데니스 레인 목사를 만났고, 그에게서 선교사의 삶과 강해설교의 축복을 배웠다.

 

 

 

 

한국 교회의 모델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는 뉴질랜드 바이블칼리지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이형기 사모와 1978년 결혼하였다. 이들 부부는 안식과 기도, 학업을 위해 1981년에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폭넓은 지적 경험을 맛보며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LBC에서 복음주의 신학을 배웠고, 선교단체 WEC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았다. 특히 London Institutes에서 만난 존 스토트를 통해 ‘현대 사회를 변화시키는 복음의 영향력’에 대한 큰 도전을 받았다. 영국에서 안식하는 동안 하용조 목사는 사도행전에서 보여준 초대교회, 예수님께이 세우시고 성령님께서 운행하시는 ‘바로 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1985년 귀국한 하용조 목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12가정과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이 작은 모임이 오늘날 7만 5,000여 명의 성도가 출석하고, 선교사 1, 302명을 파송한 교회로 성장하는 밑거름이었다.
교회 창립 당시부터 말씀 사역에 전념한 온누리교회는 지금도 강해설교와 성경공부, 일대일 양육, 큐티 사역 등 제자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예꿈, 꿈땅, 파워웨이브, 대학청년공동체는 한국 교회에 영아에서 청년에 이르는 차세대 목회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가정사역, 여성사역, 전도사역, 장애인사역, 회복사역, 상담사역 등 다양한 사역은 한국 교회의 목회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특히 경배와찬양, 일대일, 큐티, 아버지학교, 열린예배, 비전과 리더십 축제, 맞춤전도 등의 프로그램은 한국 교회가 질적으로 성장하는 자양분되었다.

 

 

복음 들고 땅 끝까지

 

하용조 목사는 2003년 Acts29 비전을 선포하고 국내, 미주, 오세아니아, 일본, 중국, 중동에 34개의 비전 교회를 설립했다. 2005년 3월에는 지구촌 전역을 신앙 네트워크화하는 꿈을 갖고 선교 전문 위성방송인 CGNTV를 개국하였다. CGNTV는 전 세계를 9개 권역으로 나눠 설치된 인공위성을 통해 650만 명의 해외 한인들과 수많은 선교사와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있다. 또한 ‘디지털 목회’라는 새 장을 열고 인터넷, 위성, 케이블, 모바일 등 매체를 활용해 사이버 공간까지 복음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미국 바이올라 대학교와 트리니티 신학교, 숭실대, 명지대, 장신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하용조 목사는 한동대학교와 전주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고,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후학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일꾼을 양성하는데 헌신했다.

 

 

선교 열정 불태운 큰 별 지다

 

지난 2005년, 한국교회사연구원이 주관하는 ‘한국교회 발전에 이바지한 10대 설교가’의 한 사람으로 선정된 하용조 목사의 저서로는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꾼다》 《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 《큐티하면 행복해집니다》 《정신 차리고 삽시다》 《한 사람을 찾습니다》 《힘은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창세기 강해 설교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사도행전 강해설교》 《로마서의 축복, 로마서의 비전》 《마태복음 강해 설교 시리즈》(전12권) 《행복한 아침》 《예수님만 바라보면 행복합니다》 등이 있다.

 

 

‘온 세상을 위한 교회’ ‘온 세상을 향한 교회’를 향한 꿈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가진 하용조 목사는 그동안 일곱 번의 간암 수술을  받았다. 젊은 시절부터 질병과의 싸움으로 연약해진 육체의 고통은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더욱 더 소망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 하용조 목사는 온누리교회, 두란노, CGNTV를 통해 물 붓듯 부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한국 교회와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온 세상을 위한 교회’, ‘온 세상을 향한 교회’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진액을 쏟아내고 지난 8월 2일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하용조 목사는 이형기 사모와의 사이에 아들 성석 군과 딸 성지 양을 두었다.